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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임승차의 경제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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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는 나쁜가?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때문에 괘씸한가? 만일 타인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획득하는 경우에도 부당하다고 판단하는가? 내가 동해 해돋이를 구경하고 설악산 자연휴양림에서 피톤치드를 흡입한다면 그 자체는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타인에게 손실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개인적 이득을 얻는 나무랄 데 없는 행위이다. 타인과 이익을 경합할 필요가 없는 공공재는 ‘공짜로’ 소비하더라도 나쁘다거나 부당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무임승차를 비난하거나 거부하는 근거는 타인에게 또는 사회적으로 비용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를테면 65세 이상 어르신은 그야말로 무임승차한다. 노약자나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무임승차의 사회적 비용보다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구성원이 합의한 결과이다. 소수의 일탈적인 무임승차를 애교스럽게 용인하기도 한다. 3-40년전에는 무전여행이 젊은이의 낭만으로 여겨졌고, 책 도둑은 도둑질이 아니라고도 했다. 사실 행위자의 입장에서는 무임승차가 가장 효율적인 행위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무임승차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사회복지의 증대라고도 한다. 내가 납부한 세금이나 사회적 기여도보다 많은 사회적 이익을 누린다면 엄밀하게는 나는 무임승차자에 속한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적법하게 수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임승차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발상으로 들여다보자. 합의되지 않은 무임승차의 행위는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끼치는 손실이나 영향이 미미하다 하더라도 부당하다. 그 행위가 반복되거나 확산됨으로써 간접영향이 증폭될 수 있다. 무임승차와 대척점에 있는 사회적 기여 행위는 어떤가? 개인과 조직의 사회적 선행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타인에게 직접적인 유익을 끼쳐야만 유효한가? 무임승차를 판단하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사회적 기여 행위를 달리 판단해야 한다. 나와 내 기업의 사회적 선행이 당장 직접적인 사회적 성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의미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무임승차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관점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여 행위의 간접적 파급영향을 판단할 수 있다.

무임승차에 대해서는 공정성과 형평성의 잣대를 엄격하게 또는 신축적으로도 수월하게 적용할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 규제가 남발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일한 관점과 가치관에 근거한 사회적 기여 행위는 그저 자율적 선행으로만 평가되기 일쑤다. 사회적 가치와 반향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를 용광로로 던진 부동산, 재난지원금, 무상복지, 산업규제 등의 이슈에서 공정성과 형평성과 효율성에 기반한 정책 판단을 하면서 감시와 통제의 관점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기여 활동의 사회경제적 파급영향에 대한 건설적 정책 방향에 대한 고려는 미진하고 안일하다. 언론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언론의 1면(첫 화면) 뉴스는 광의의 무임승차가 발생했고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무임승차의 대척점에서 사회경제적 이익 증진에 기여한 활동에 대한 관심에는 소극적이다. 이를테면 어떤 기업의 비리는 쉽게 대서특필이 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기여 행위는 관심을 집중시키는 기삿거리가 되기 어렵다. 국회 앞 개인과 단체의 상시적인 시위 활동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 유발과 사회적 가치 생산의 경계점에서 평가한다.

우리는 모두 세금 납부를 아까워한다. 공영방송에서도 절세의 비결을 특별 보너스처럼 퍼트린다. 그런데 만일 나의 절세가 국가 세수 부족으로 나타난다면, 나는 제도의 틈을 활용하여 합법적인 무임승차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세금 납부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무임승차의 처벌을 넘어 사회적 이익과 가치를 확장하기 위한 웅비의 역발상을 펼쳐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사회적 기여 행위를 북돋우는 정책 철학과 방안을 부각해야 한다. 사회에 대한 나 혼자의 외침은 변방의 북소리일 뿐 아무런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운명적 생각을 깨트려야 한다. 기부금의 소득공제 금액을 증액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 경제와 사회의 최대 현안인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구직수당 지급에는 민감하지만 기업의 일자리 창출 투자 여건을 혁신하기에는 둔감하다.

무임승차에 우리의 시선을 묶어두는 것은 우민화정책이다. 일상의 먹거리와 입을거리와 재밋거리를 창출하는 개인과 기업의 사회적 몸짓을 회복해야 한다. 지도자와 정책은 규제를 집행하는 통로가 되기 이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선출직 공직자가 공약을 폐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임기 내 무리한 강행도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수의 사회적 구성원이 작은 몸짓으로 세워 나아가는 사회적 가치가 경쟁력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출처 : 대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