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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 포도주’와 ‘새 부대’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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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제가 좋아질까? 주택 공급과 부동산 가격, 원유와 원자재 수입 가격, 소비자 물가, 대출 금리, 자영업 재활, 청년 일자리, 개인과 국가 부채, 노동 갈등, 자산 격차 등 변동성이 커진 숙제가 산적해 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직면하게 되는 경제 현안들이다. 당선자로서는 문제해결을 호기롭게 장담할지라도 현 정부의 정책을 개혁하거나 계승하거나 보완하기에 국내외 정세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성경에 따르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부대’를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새 부대’ 정도가 아니라 새 매장 건설 수준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나 예전 과학기술교육부 기능의 부활 논의도 두드러진다. 외교부는 통상 기능을 탈환하겠다고 나섰다. 본격적인 정부 조직개편이 6.1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졌지만 ‘새 부대’는 암암리에 다양한 디자인으로 제작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새 포도주’는 어떻게 되었는가? 당선자 소속 정당의 이번 대선 정책 공약집의 제목에는 “공정과 상식”이 부각되었다. 10대 공약 가운데 경제정책이 중심이 되는 두 번째 공약, “행복경제시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에는 좋은 일자리, 규제 혁파, 중소•벤처기업 육성, 경제 활력 등이 나열되어 있다. 신선식품은 아니다. 이를테면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보졸레 지방에서 매년 9월 초 수확한 포도를 4-6주 숙성하여 바로 제조한 후 당해 11월 셋째 주 목요일 일제히 출시하는 새 포도주 ‘보졸레 누보’는 아니다. 규제 혁파는 15년 전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 당시에도 ‘전봇대 뽑기’로 이미 유명세를 떨쳤었다.


5년 임기의 대통령과 정부가 ‘새 포도주’보다 ‘새 부대’에 더 민감하다면 주객과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새 부대’가 아니라 ‘새 포도주’가 가치의 본질이고 동력이다. ‘새 포도주’는 제조하여 며칠 사이 바로 마시는 보졸레 누보가 될 수도 있고 몇 년간 숙성시킨 빈티지가 될 수도 있다. 새것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 통찰의 목적에 따라 새것으로 인증된다.


대통령 탄핵의 촛불과 적폐 청산의 깃발로 태동한 문재인 정부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박탈감을 고스란히 관통한 점은 역설적이다. 만일 윤석열 정부가 민생 식탁에 새 포도주를 올려주지 못하고 새 부대만 요란하게 펼친다면 다시 5년 동안 총탄 없는 내전이 반복될 것이다.


새 정부에서 경제가 새로워지려면 두 가지를 거듭 숙고해야 한다. 하나는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가 움직이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전자는 경제철학의 문제이고, 후자는 경제활동의 문제이다. 경제는 돈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물의 흐름으로 관찰해야 한다. 없으면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막히면 옆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4대강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보는 허물면서 경제의 흐름은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으려 했다. 소득의 흐름과 일자리 흐름에서 그랬고 부동산의 흐름에서 그랬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제활동과 산업은 수평적으로는 360도로 움직이고 수직적으로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자유방임이나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경작하여 국민을 이롭게 하는 활동(경제)의 확장성과 역동성을 제대로 따라가야 무한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 지난 50년간 ICT 산업이 그랬고, 현재 디지털 경제가 그러하고, 미래 시공간 초월 경제가 그러할 것이다.


2004년부터 10년간 연재된 후 총 44권의 단행본으로 발매된 만화 ‘신의 물방울’은 포도주를 문화로 승화시켰다. 술 마시는 성인에게 만화로. 우리나라에서도 20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글의 원저자인 기바야시 남매(공동 필명은 아기 타다시)는 프랑스 포도주를 세계에 알린 공로로 2018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포도주의 독특한 향을 재발견하고 음식에 따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개성 있는 포도주 12개(12사도)를 찾아 나선 이야기를 엮었다.


새 정부의 새 경제는 과거를 뒤집어엎을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독특한 향(역량)을 재발견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물이 나무뿌리를 넘고 암벽을 돌아가듯 우리 경제가 글로벌 공급구조에서 물길을 찾아 유유히 흘러가도록 특유의 잠재적 적응력을 드높여야 한다. 우리 경제의 ‘신의 물방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글로벌 경제 환경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곡물, 에너지, 원자재 공급의 부족으로 전 세계적 물가상승 요인이 발생하여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엄중한 시기에 새 정부가 치열하게 ‘새 포도주’를 개발해야 할 텐데 새 포장지와 새 부대부터 마련하려고 한다면 안일한 판단이고 오산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출처 : 대한경제